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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태어나면서 돈이 쥐꼬리도 없었음.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흥청망청 하면서 가산을 탕진하고
어머니는 마트, 가정부, 이런저런 궂을 일 노래방도우미 까지 하면서 나를 먹여살렸음.
우리 어머니는 20살때 나를 가져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결혼하게 됨.
어머니도 항상 빚에 쪼들리고 세상살이가 힘들다보니 술을 자주하시고 술만먹으면 나한테
내인생이 너때문에 이렇게 됬다고 욕하고 나를 몰아세웠음.
어린시절 내가 철이 없어서 말썽을 많이 일으켰음. 공부는 중간정도 했지만
딱 중간까지만하고 신나게 놀러다니고 싸움박질하고 다녔음.
그래도 약한애들은 괴롭히지 않았음. 어렸을때부터 친척들도 날 싫어하고 어머니 아버지는 집에 없어서
맨날 혼자 였음. 혼자 너무 외롭고 어린시절 6개월~1년 도 못살고 맨날 이사 다니느라 깊게사귈 친구도
없었음. 9살차이나는 남동생이 있지만 그때당시엔 같이 놀수 있는 거리가 없었음.
그래서인지 나는 학창시절에 소위 노는 애였지만 유일하게 내가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음.
항상 외로워서 다 친구 하려고했고 가지고있는돈 다 쓰면서 친하게 지낼려고 했음.
그러다 대충대충 지잡대를 갔음.
원래 공부에 관심없었지만 어머니 고생하면서 내 뒷바라지 해줘서 어쩔수없이 중간까지 가던 성적도
캠퍼스의 자유로운 생활에 모두 사라지고 붙잡아주는 사람없는 방탕한 사람이 되었음
일렉기타에 빠져 여자에 빠져 술에빠져 게임에 빠져 한학기에 첫 일주일만 수업들어가고
남은 한학기동안 학교만가고 모든수업을 제끼기 시작했음.
군대도 가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2학년끝나고 갔음.
2학년 끝나고 간이유는 하나임. 에프가 너무많아 학사경고 3번 누적으로 학교에서 퇴교조치를 당해서
더이상 미룰수가 없어서 간것임.
21살에 부모님도 이혼하고 이제 어머니 나 초등학교 5학년짜리 남동생만 남았음.
그렇게 21살에 군대를 갈 날짜가 다가오고 내인생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낌.
하지만 그때도 철없는 생각으로 느즈막히 배운 일렉기타가지고 난 이길로 가야겠어라는 말도안되는
멍청한 생각으로 얼레불레 살아가고 있었음. 그러다 군대 가기 4주남기고 어머니가 친구들이랑 놀러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함.
6개월간 입원치료에 왼쪽 갈비뼈 5개 골절 쇄골 골절 폐수종이 생긴 큰 사고였음.
가뜩이나 나락으로 떨어지고 군대갈날만 우울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둥이었던 어머니가
그런 사고를 당하자 급격한 멘탈붕괴 및 우울증이 시작되었음.
입대 4주남기고 일자리도 못구할뿐더러 어머니는 손발을 아예 못움직였고
동생은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절망의 상황이었음.
군대를 연기 하려 했으나. 그럴 의지도 생각도 없어서
군대가서 죽어버려야지 세상이 날 좆같이 만들었어. 따위의 병신같은 말만 지껄이면서
집에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음. 내가 제일 싫어하던 아버지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자 더이상 살아갈 자신도
배짱도 없어졌었음.
20살이 되면 성인에 대한 책임감이라는것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지만.
사실상 난 그때까지 철부지 5살짜리 애새끼였음. 해놓은것도 이룬것도 배운것도 가진것도 아무것도 없고
대가리속엔 오로지 내가 놀생각 내가 편할생각 게임할생각만하는 똥만 가득찬 쓰레기가 있었음.
그렇게 군대에 갔음.
군대가기전에 100Kg에 육박하는 몸을 가지고 군대 가봐야 잘할수 있겠음?
가자마자 무거운몸으로 몸을 무리하게 움직여 훈련병때 고관절염좌가 걸림.
점점심해져 걷지도 못하고 훈련소에서 자대갈준비는 커녕 몸이아파 훈련도 열외하는 고문관새끼가 되어버렸음.
고통의 연속이었음. 집걱정은 집걱정대로 되고 나는 지금 군대에서 고문관 취급받으며 훈련도 제대로 못받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난 이미 가정사랑 현재 상태로 인해 관심병사가 되었음.
화장실을 가도 뭘해도 내옆에 꼭 선임이 따라붙었음.
그떄 한창 수류탄사건때문에 관심병사에대한 조치가 빡셀때라 어쩔 수없이 눈치만보고 죽을떄만 기다리고 있었음.
그래서 계획을 세웠음.
' 군생활을 열심히 해서 관심병사를 벗어나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게되면 그때 자살해버리자. '
지금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발상임.
그떄부터 미친 군생활이 시작되었음. 타의가 아닌 자의로 모든일에 손들어 먼저 나서고
후임이든 선임이든 내가 먼저 나서고 연등시간 주특기 공부하고 개인정비시간에 운동해서 훈련잘뛸수있게
살빼고
그랬더니 자대 배치때 110KG가까이 되던 두달만에 몸이 80KG 대로 줄어들었음.(키는 186이었음)
몸도 좋아지고 어떤 훈련이든 제일 잘뛸수 있었음.
그렇게 '죽기' 위한 노력을 했더니 입대 3개월 만에 내손에 포상외박 두장이랑 3박4일 포상휴가
100일 신병위로휴가가 들려있었음.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때는 절박했음.
그렇게 군생활 하고나니 모든 패턴이 180도 바뀌어 버렸음.
훈련 못뛰고 생활 못하는 선임보다 내가 대우받고 군기빡센 전방,보병,화기중대에서 일요일에 생활관에서
누워서 TV볼 수 있는 이등병이 되었음.
물론 그렇게 대우받고나서도 고참이 할일 후임이 할 일 가리지않고 모조리 다 내가 했음.
일병이 되자마자 특급전사도 되고 사단 중화기 집체교육때 사단표준조교가 되어있었음.
정말 내 기억엔 짧은 2년이었음. 너무 바쁘게 2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전역날이었음.
시간이 안간다는 군대말이 나한테는 아무해당이 안되었음.
어느새 죽겠다는 생각은 온데 간데 없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시험해보고싶어서 군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걸 다했음.
'난 전역날 아침 신고하기전에도 알통 구보하고 신고하고 나감ㅋ'
그렇게 전역을 하고나서 막막해졌음. 군대에선 내가 날아다녔지만 사회에 나오자
내가 군대가기전까지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어 당장 막막했음.
태어나서 21살때 까지 내가 이루어놓은것보다 21살부터 23살 2년도 안되는 시간에 내가 이룬것이 백배이상
많았음.
하지만 할수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었음.
그 미쳐있었던 게임, 술 딱 끊고 전역하고 이틀뒤 곧바로 인력소개소를 가서 공사현장 노가다를 뛰러감.
우리집이 의정부였는데 일하는곳은 충남 아산만이었음.
옷가방 하나에 단돈 교통비+만원 들고 내려가서
숙소까지가는 택시비도 거기 오야지가 내줬음.
도착하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음.
21살때까지 대학생들이랑 희희낙락 하고 군대가서 내또래 청춘들이랑 희희낙락 한 나에게
노가다판 숙소에서의 아저씨들이란 충격으로 다가왔음.
일끝나고 깡소주에 컵라면
더러운 몰골, 먼지뒤집어쓴 옷들 모든게 충격이었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저씨들. 갈구는 아저씨들.
군대보다 훨씬 심한곳이었음.
나는 이제 막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음.
아무 생각없이 일만 하기 시작했음. 거기서도 배울일이 있겠지 하면서
미친듯이 일만함. 그렇게 일하고 궁금한거 물어보고 하니 그 노가다팀을 써주는 업체 과장급이 날 좋게 봤음.
나한테 여기 공무대리로 올생각 없냐. 중소기업이지만 한달에 150씩 받아갈수있다.
대학도 좀 다녔으니 머리도 좋으니까 잘할거다 라면서 나를 데려갈려고 함.
솔직히 내가 앞으로 할것도 없고 이룬것도 없으니 혹했음. 이 막장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올라가고 싶어서
승낙하려고 했으나. 난 꼴에 그게 성에 안찼음.
그래서 거절하고 그 노가다 일을 6개월을 더함. 나이가 24살이 되었음.
그러다가 공사현장에서 큰 사고가 나서 같이일하던 사람들이 크게다침
옥상이 무너져 내려서 같이일하던사람이 깔려서 부상당했음.
난 공구가질러 내려갔다가 사고를 면함. 어머니가 돈안벌어도 되니까 당장 올라오라고
휴무 내고 쉬러올라갔더니 다시 못가게 하고 어머니의 하나뿐인 혈육인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어머니도 봐드려야겠다 라는 생각에 일을 때려침.
그렇게 장례 치르고 집에서 한 일주일간 쉬니까 근 3년동안 미친듯이 무언갈 했던 몸이 또 근질거림.
알바 사이트를 검색하다보니 판매직을 모집하는게 있어 판매직을 시작함
(여기서부터는 판매직 이상의 정보를 밝히지 않겠음.)
말그대로 화장품 판매사원처럼 판매하는거라고만 알아두면 됨.
그냥 쉬면서 용돈벌겸 시작했음.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무언갈 하면 끝장을 보는 버릇이 생겼음.
2주만에 수습기간을 실적우수자로 끝내버리고 미친듯이 판매를 함.
매장에서 판매가 안되면 방문판매를 하고 쉬는날도 반납하고 미친듯이 판매에만 열중했음.
판매를 잘하기 위해 서점가서 심리학책 사다가 틈틈이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판매를 잘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
기본급 80+A 많이 받아도 180~190 정도인 판매사월급을 400~500까지 끌어올림.
6개월연속 상권내 판매왕 이었고 타 상권에서 판매전략 배우러도 파견오고 그랬음.
그때 비전이 보였음. 회사가 대기업 3곳을 대라 하면 무조건 나오는 기업이라 여기서 잘하면
이딴 일용직을 벗어나 계약직 정규직이 될수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음.
24살 여름 판매사 6개월만에 계약직으로 올라가 판매사들 관리, 상권관리 하는 자리로 승진했음.
돈도 벌었으니 조그만 경차를 샀음. 판매가 아닌 영업을 해서 영업실적도 멍청나게 끌어올렸음.
자가용 있는 사람은 알거임. 계약직이라 유류비지원도 아무것도 안되는 월급중
기름값을 100만원씩썼음. 2011년 5월에 산 내차가 지금현재 4만키로를 육박함.
판매직에서 벗어나 월급도 180정도로 줄어버렸음. 하지만 이것도 과분하다 싶어 미친듯이 영업해서
실적 끌어냈음.
2012년 25살 겨울이 끝날즈음 2월 공개채용에 내부인력 특채로 정규직 지원을 했음.
2월말~3월 중순까지의 서류전형->인적성테스트->신체검사->1차임원면접->2차임원면접 의 일정을 끝내고
정규직이 되었음.
대기업 정규직이 인생의 끝은 아님.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던 내 인생에서 대학도 제대로 졸업하지못하고 특기도 제대로 없는 내가
대기업 정규직이 되었다는 성취감 하나가 날 뿌듯하게 만들었음.
어머니도 너무 좋아하고 어느새 자랑거리가 되었음.
이제 목표는 하나임. 정규직 일 하면서 학점은행으로 모자른 학정채워서 대학졸업장 따서
탄탄하게 승진하는것.
21~25살 어찌보면 흥청망청 할 수 있었던 나이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거기서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수있는
일을 겪었음.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봐야 회사 월급쟁이지만 4년여의 시간동안 많은것을 배웠음.
'죽기'위해 시작한 일이 지금은 내 밑천이되어서 별다른 기술없이 자리잡을수 있었음.
물론 이 회사에 들어와서 70키로대였던몸이 다시 100키로 가까이 찌고
스트레스로 흰머리 및 고혈압이 생겨 몸에 이상이 좀 있지만
내 인생을 뒤바꿀 기회를 잡은거에 비하면 나는 싸게 바꾼거라고 생각함.
지금은 대학시절 내 후배들이 졸업을 앞두고 나한테 취업 상담하러 자주옴.
가르칠거 쥐뿔도 하나없는 나이지만 술사주면서 한가지는 항상 말함.
죽을 각오로 덤벼들면 못할게 없다. 니가 뭔가를 하다가 쓰러지면 요즘세상엔 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응급실 실려가고 알아서 링겔꼽아주고 알아서 몸낫게 해준다.
죽자고 덤벼드는놈 열놈이 덤벼도 못이긴다. 항상 열심히 해라.
뜬구름 잡는 개소리만 지껄일뿐이지만. 나도 이런 개소리 믿고 열심히 하니까 어찌어찌 되드라.
라고 조언아닌 조언을 해주고 있다.
아직 나도 이글을보는 사람들도 헤쳐나갈길이 산더미 은하수 만큼 많지만.
요즘들어 뒤를보면서 생각하면
사람이 발전할수 있는건
운도 아닌, 돈도 아닌, 빽도 아닌, 학벌도 아닌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고민게시판 보면 자신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프다.
그러곤 내 옛날 생각을 한다. 나도 저랬었는데.. 하면서
가슴한켠이 쓰려진다. 하지만 가진것 없는 사람은 열정하나 가슴에 품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거 하나 가슴에 품고 싸울려면 이길수있다는 자신감 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런
긴글을 쓰게되었다.
우리집은 태어나면서 돈이 쥐꼬리도 없었음.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흥청망청 하면서 가산을 탕진하고
어머니는 마트, 가정부, 이런저런 궂을 일 노래방도우미 까지 하면서 나를 먹여살렸음.
우리 어머니는 20살때 나를 가져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결혼하게 됨.
어머니도 항상 빚에 쪼들리고 세상살이가 힘들다보니 술을 자주하시고 술만먹으면 나한테
내인생이 너때문에 이렇게 됬다고 욕하고 나를 몰아세웠음.
어린시절 내가 철이 없어서 말썽을 많이 일으켰음. 공부는 중간정도 했지만
딱 중간까지만하고 신나게 놀러다니고 싸움박질하고 다녔음.
그래도 약한애들은 괴롭히지 않았음. 어렸을때부터 친척들도 날 싫어하고 어머니 아버지는 집에 없어서
맨날 혼자 였음. 혼자 너무 외롭고 어린시절 6개월~1년 도 못살고 맨날 이사 다니느라 깊게사귈 친구도
없었음. 9살차이나는 남동생이 있지만 그때당시엔 같이 놀수 있는 거리가 없었음.
그래서인지 나는 학창시절에 소위 노는 애였지만 유일하게 내가 괴롭히는 사람이 없었음.
항상 외로워서 다 친구 하려고했고 가지고있는돈 다 쓰면서 친하게 지낼려고 했음.
그러다 대충대충 지잡대를 갔음.
원래 공부에 관심없었지만 어머니 고생하면서 내 뒷바라지 해줘서 어쩔수없이 중간까지 가던 성적도
캠퍼스의 자유로운 생활에 모두 사라지고 붙잡아주는 사람없는 방탕한 사람이 되었음
일렉기타에 빠져 여자에 빠져 술에빠져 게임에 빠져 한학기에 첫 일주일만 수업들어가고
남은 한학기동안 학교만가고 모든수업을 제끼기 시작했음.
군대도 가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2학년끝나고 갔음.
2학년 끝나고 간이유는 하나임. 에프가 너무많아 학사경고 3번 누적으로 학교에서 퇴교조치를 당해서
더이상 미룰수가 없어서 간것임.
21살에 부모님도 이혼하고 이제 어머니 나 초등학교 5학년짜리 남동생만 남았음.
그렇게 21살에 군대를 갈 날짜가 다가오고 내인생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낌.
하지만 그때도 철없는 생각으로 느즈막히 배운 일렉기타가지고 난 이길로 가야겠어라는 말도안되는
멍청한 생각으로 얼레불레 살아가고 있었음. 그러다 군대 가기 4주남기고 어머니가 친구들이랑 놀러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함.
6개월간 입원치료에 왼쪽 갈비뼈 5개 골절 쇄골 골절 폐수종이 생긴 큰 사고였음.
가뜩이나 나락으로 떨어지고 군대갈날만 우울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둥이었던 어머니가
그런 사고를 당하자 급격한 멘탈붕괴 및 우울증이 시작되었음.
입대 4주남기고 일자리도 못구할뿐더러 어머니는 손발을 아예 못움직였고
동생은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절망의 상황이었음.
군대를 연기 하려 했으나. 그럴 의지도 생각도 없어서
군대가서 죽어버려야지 세상이 날 좆같이 만들었어. 따위의 병신같은 말만 지껄이면서
집에서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음. 내가 제일 싫어하던 아버지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자 더이상 살아갈 자신도
배짱도 없어졌었음.
20살이 되면 성인에 대한 책임감이라는것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지만.
사실상 난 그때까지 철부지 5살짜리 애새끼였음. 해놓은것도 이룬것도 배운것도 가진것도 아무것도 없고
대가리속엔 오로지 내가 놀생각 내가 편할생각 게임할생각만하는 똥만 가득찬 쓰레기가 있었음.
그렇게 군대에 갔음.
군대가기전에 100Kg에 육박하는 몸을 가지고 군대 가봐야 잘할수 있겠음?
가자마자 무거운몸으로 몸을 무리하게 움직여 훈련병때 고관절염좌가 걸림.
점점심해져 걷지도 못하고 훈련소에서 자대갈준비는 커녕 몸이아파 훈련도 열외하는 고문관새끼가 되어버렸음.
고통의 연속이었음. 집걱정은 집걱정대로 되고 나는 지금 군대에서 고문관 취급받으며 훈련도 제대로 못받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난 이미 가정사랑 현재 상태로 인해 관심병사가 되었음.
화장실을 가도 뭘해도 내옆에 꼭 선임이 따라붙었음.
그떄 한창 수류탄사건때문에 관심병사에대한 조치가 빡셀때라 어쩔 수없이 눈치만보고 죽을떄만 기다리고 있었음.
그래서 계획을 세웠음.
' 군생활을 열심히 해서 관심병사를 벗어나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게되면 그때 자살해버리자. '
지금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발상임.
그떄부터 미친 군생활이 시작되었음. 타의가 아닌 자의로 모든일에 손들어 먼저 나서고
후임이든 선임이든 내가 먼저 나서고 연등시간 주특기 공부하고 개인정비시간에 운동해서 훈련잘뛸수있게
살빼고
그랬더니 자대 배치때 110KG가까이 되던 두달만에 몸이 80KG 대로 줄어들었음.(키는 186이었음)
몸도 좋아지고 어떤 훈련이든 제일 잘뛸수 있었음.
그렇게 '죽기' 위한 노력을 했더니 입대 3개월 만에 내손에 포상외박 두장이랑 3박4일 포상휴가
100일 신병위로휴가가 들려있었음.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때는 절박했음.
그렇게 군생활 하고나니 모든 패턴이 180도 바뀌어 버렸음.
훈련 못뛰고 생활 못하는 선임보다 내가 대우받고 군기빡센 전방,보병,화기중대에서 일요일에 생활관에서
누워서 TV볼 수 있는 이등병이 되었음.
물론 그렇게 대우받고나서도 고참이 할일 후임이 할 일 가리지않고 모조리 다 내가 했음.
일병이 되자마자 특급전사도 되고 사단 중화기 집체교육때 사단표준조교가 되어있었음.
정말 내 기억엔 짧은 2년이었음. 너무 바쁘게 2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전역날이었음.
시간이 안간다는 군대말이 나한테는 아무해당이 안되었음.
어느새 죽겠다는 생각은 온데 간데 없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시험해보고싶어서 군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걸 다했음.
'난 전역날 아침 신고하기전에도 알통 구보하고 신고하고 나감ㅋ'
그렇게 전역을 하고나서 막막해졌음. 군대에선 내가 날아다녔지만 사회에 나오자
내가 군대가기전까지 해놓은게 아무것도 없어 당장 막막했음.
태어나서 21살때 까지 내가 이루어놓은것보다 21살부터 23살 2년도 안되는 시간에 내가 이룬것이 백배이상
많았음.
하지만 할수있다라는 자신감이 있었음.
그 미쳐있었던 게임, 술 딱 끊고 전역하고 이틀뒤 곧바로 인력소개소를 가서 공사현장 노가다를 뛰러감.
우리집이 의정부였는데 일하는곳은 충남 아산만이었음.
옷가방 하나에 단돈 교통비+만원 들고 내려가서
숙소까지가는 택시비도 거기 오야지가 내줬음.
도착하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음.
21살때까지 대학생들이랑 희희낙락 하고 군대가서 내또래 청춘들이랑 희희낙락 한 나에게
노가다판 숙소에서의 아저씨들이란 충격으로 다가왔음.
일끝나고 깡소주에 컵라면
더러운 몰골, 먼지뒤집어쓴 옷들 모든게 충격이었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저씨들. 갈구는 아저씨들.
군대보다 훨씬 심한곳이었음.
나는 이제 막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음.
아무 생각없이 일만 하기 시작했음. 거기서도 배울일이 있겠지 하면서
미친듯이 일만함. 그렇게 일하고 궁금한거 물어보고 하니 그 노가다팀을 써주는 업체 과장급이 날 좋게 봤음.
나한테 여기 공무대리로 올생각 없냐. 중소기업이지만 한달에 150씩 받아갈수있다.
대학도 좀 다녔으니 머리도 좋으니까 잘할거다 라면서 나를 데려갈려고 함.
솔직히 내가 앞으로 할것도 없고 이룬것도 없으니 혹했음. 이 막장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올라가고 싶어서
승낙하려고 했으나. 난 꼴에 그게 성에 안찼음.
그래서 거절하고 그 노가다 일을 6개월을 더함. 나이가 24살이 되었음.
그러다가 공사현장에서 큰 사고가 나서 같이일하던 사람들이 크게다침
옥상이 무너져 내려서 같이일하던사람이 깔려서 부상당했음.
난 공구가질러 내려갔다가 사고를 면함. 어머니가 돈안벌어도 되니까 당장 올라오라고
휴무 내고 쉬러올라갔더니 다시 못가게 하고 어머니의 하나뿐인 혈육인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어머니도 봐드려야겠다 라는 생각에 일을 때려침.
그렇게 장례 치르고 집에서 한 일주일간 쉬니까 근 3년동안 미친듯이 무언갈 했던 몸이 또 근질거림.
알바 사이트를 검색하다보니 판매직을 모집하는게 있어 판매직을 시작함
(여기서부터는 판매직 이상의 정보를 밝히지 않겠음.)
말그대로 화장품 판매사원처럼 판매하는거라고만 알아두면 됨.
그냥 쉬면서 용돈벌겸 시작했음. 하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무언갈 하면 끝장을 보는 버릇이 생겼음.
2주만에 수습기간을 실적우수자로 끝내버리고 미친듯이 판매를 함.
매장에서 판매가 안되면 방문판매를 하고 쉬는날도 반납하고 미친듯이 판매에만 열중했음.
판매를 잘하기 위해 서점가서 심리학책 사다가 틈틈이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판매를 잘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
기본급 80+A 많이 받아도 180~190 정도인 판매사월급을 400~500까지 끌어올림.
6개월연속 상권내 판매왕 이었고 타 상권에서 판매전략 배우러도 파견오고 그랬음.
그때 비전이 보였음. 회사가 대기업 3곳을 대라 하면 무조건 나오는 기업이라 여기서 잘하면
이딴 일용직을 벗어나 계약직 정규직이 될수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음.
24살 여름 판매사 6개월만에 계약직으로 올라가 판매사들 관리, 상권관리 하는 자리로 승진했음.
돈도 벌었으니 조그만 경차를 샀음. 판매가 아닌 영업을 해서 영업실적도 멍청나게 끌어올렸음.
자가용 있는 사람은 알거임. 계약직이라 유류비지원도 아무것도 안되는 월급중
기름값을 100만원씩썼음. 2011년 5월에 산 내차가 지금현재 4만키로를 육박함.
판매직에서 벗어나 월급도 180정도로 줄어버렸음. 하지만 이것도 과분하다 싶어 미친듯이 영업해서
실적 끌어냈음.
2012년 25살 겨울이 끝날즈음 2월 공개채용에 내부인력 특채로 정규직 지원을 했음.
2월말~3월 중순까지의 서류전형->인적성테스트->신체검사->1차임원면접->2차임원면접 의 일정을 끝내고
정규직이 되었음.
대기업 정규직이 인생의 끝은 아님.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던 내 인생에서 대학도 제대로 졸업하지못하고 특기도 제대로 없는 내가
대기업 정규직이 되었다는 성취감 하나가 날 뿌듯하게 만들었음.
어머니도 너무 좋아하고 어느새 자랑거리가 되었음.
이제 목표는 하나임. 정규직 일 하면서 학점은행으로 모자른 학정채워서 대학졸업장 따서
탄탄하게 승진하는것.
21~25살 어찌보면 흥청망청 할 수 있었던 나이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거기서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수있는
일을 겪었음.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봐야 회사 월급쟁이지만 4년여의 시간동안 많은것을 배웠음.
'죽기'위해 시작한 일이 지금은 내 밑천이되어서 별다른 기술없이 자리잡을수 있었음.
물론 이 회사에 들어와서 70키로대였던몸이 다시 100키로 가까이 찌고
스트레스로 흰머리 및 고혈압이 생겨 몸에 이상이 좀 있지만
내 인생을 뒤바꿀 기회를 잡은거에 비하면 나는 싸게 바꾼거라고 생각함.
지금은 대학시절 내 후배들이 졸업을 앞두고 나한테 취업 상담하러 자주옴.
가르칠거 쥐뿔도 하나없는 나이지만 술사주면서 한가지는 항상 말함.
죽을 각오로 덤벼들면 못할게 없다. 니가 뭔가를 하다가 쓰러지면 요즘세상엔 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응급실 실려가고 알아서 링겔꼽아주고 알아서 몸낫게 해준다.
죽자고 덤벼드는놈 열놈이 덤벼도 못이긴다. 항상 열심히 해라.
뜬구름 잡는 개소리만 지껄일뿐이지만. 나도 이런 개소리 믿고 열심히 하니까 어찌어찌 되드라.
라고 조언아닌 조언을 해주고 있다.
아직 나도 이글을보는 사람들도 헤쳐나갈길이 산더미 은하수 만큼 많지만.
요즘들어 뒤를보면서 생각하면
사람이 발전할수 있는건
운도 아닌, 돈도 아닌, 빽도 아닌, 학벌도 아닌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고민게시판 보면 자신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프다.
그러곤 내 옛날 생각을 한다. 나도 저랬었는데.. 하면서
가슴한켠이 쓰려진다. 하지만 가진것 없는 사람은 열정하나 가슴에 품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그거 하나 가슴에 품고 싸울려면 이길수있다는 자신감 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런
긴글을 쓰게되었다.